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1906~1955)는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무뢰파(無頼派)' 또는 '신게사쿠파'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다.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이며, 니가타현의 유복한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후 일본의 혼란기 속에서 기존의 도덕과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인간 본성의 진실함을 탐구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더불어 패전 직후 일본 문단을 휩쓴 퇴폐적이고 파격적인 문학적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반항적인 기질이 강했으며, 중학교 시절 수업을 빼먹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도요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하며 불교와 서구 철학에 깊이 몰두했고, 이 시기의 학문적 섭렵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흐르는 허무주의와 실존적 고뇌의 밑바탕이 되었다. 1931년 소설 '풍박(風博士)'이 당대 문단의 거물이었던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지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사카구치 안고를 전후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린 것은 1946년에 발표한 평론 '타락론(堕落論)'과 소설 '백치'이다. 그는 '타락론'을 통해 패전 후 일본 사회가 지켜온 천황제나 무사도 같은 인위적인 도덕을 기만이라고 규정했다. 대신 인간은 철저히 타락함으로써 비로소 인간 본연의 진실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역설적인 구원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패전 후 가치관의 붕괴를 경험하던 당시 일본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문학 세계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미학을 담은 '벚꽃 만발한 숲 옆에서'와 같은 작품부터 냉철한 역사 인식과 사회 비판을 담은 수필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그는 전통적인 일본의 미의식을 거부하고 추함과 혼란 속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발견하고자 했다. 평생 술과 약물 복용, 불면증에 시달리며 방랑과 고독의 삶을 살았던 그는 1955년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사카구치 안고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기성 권위에 저항하고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는 현대 일본 문학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